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든버러의 마리 (문단 편집) === 루마니아의 왕대비 === [[1927년]] 남편 [[페르디난드 1세]]가 사망하고 장남 [[카롤 2세]]가 즉위하자 왕대비가 된 마리는 루마니아에 남아서 직접 회고록과 저작을 집필하다가 [[1938년]] 62세로 사망했다. 시신은 쿠르테아 데 아르제슈 수도원에 안치된 남편 [[페르디난드 1세]]의 옆에 안장했다. 생전 마리 왕대비의 유언으로 심장은 바르치크의 마리아가 건설한 바르치크 궁전의 납골당에 안치되어 있었다. 그러나 [[1940년]] 발틱 궁전 남도브루자의 나머지가 크라이오바 조약에 의해 불가리아에 반환되면서 마리 왕비의 심장은 브란 성으로 이송되었다. 그러나 장남 [[카롤 2세]]는 어머니의 기질을 물려받은 건지 심각한 바람둥이에다 루마니아에서 인기 높은 마리 왕대비를 질투하기까지 했다. 카롤은 결혼 전부터 지지 람브리노라는 여자와 사귀면서 사생아 카롤 람브리노를 얻었고, [[그리스와 덴마크의 엘레니]]와 결혼해 유일한 적자 [[미하이 1세]]를 얻었지만 처자식을 팽개치고 또다른 정부 [[마그다 루페스쿠]]와 동거했다. 결국 보다 못한 [[페르디난드 1세]]가 아들을 제끼고 손자 [[미하이 1세]]에게 왕위를 물려줬지만 카롤은 아들의 왕위를 빼앗아 기어코 루마니아 왕으로 즉위했다. 하지만 카롤 2세는 실정만 거듭하다가 퇴위당해 루마니아에서 쫓겨나 망명 생활 끝에 사망했다. 카롤 2세의 뒤를 이어 [[미하이 1세]]가 즉위하면서 괜찮아지려나 싶었지만 루마니아 왕국은 [[제2차 세계대전]] 패전 이후 무너지면서 왕정제가 아예 폐지되었다. 이런 아들의 추태에 마리 왕대비는 굉장히 속을 썩히며 고통스러워 했다고 한다. 마리 왕대비의 막내 여동생인 [[베아트리스 레오폴딘 빅토리아|갈리에라 공작부인 베아트리스]]는 퇴위당하고 망명한 카롤 2세가 [[스페인]]에 찾아왔을 때 '''"내 언니를 죽인 망나니놈"'''이라며 조카를 만나주지도 않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